버닝 영화리뷰 청춘의 초상 청춘은 아름다울까? 봐봐요

이창동 감독 볼만한 영화

버닝, 무언가를 불태우다 라는 뜻이 아닐까요? 버닝이라는표현은여러가지의미를가지고있습니다. 어떤 일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전력을 다하는 것을 열정을 불태운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내면에 억누르던 욕망이나 분노를 ‘내뱉을 때도 태운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도 제목에서 느끼는 것처럼 뭔가 불태우겠다는 암시를 주고 있지 않을까요. 그동안 사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도 편식이 심한 영화죠. 영화는 무겁다고 하면 좀 무거운 영화입니다. 작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산자로 살아가야 하는 청춘의 슬픈 운명을 새겨주고 있으니까요. 영화에서 존스는 요즘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가난한 청년이에요. 좋은 집도, 멋진 차도 없어요. 아버지는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해 있고, 어머니는 돈이 필요할 때만 종수에게 연락합니다. 원작에서도 그랬듯이 또 한 명의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혜미. 종수는 혜미를 좋아하지만 그녀의 관심은 다른 데 있어요. 한마디로 생각되지 않는 청춘의 표준 영화는 형편없는 능력을 가진 전형적인 남성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 매정한 만남이 빚어내는 슬픈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그들은 또 다른 남자, 벤과 같은 인물과 어울릴 여지가 없으며 이들이 탈출한 곳은 옥탑방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입니다. 영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이 나라 청춘의 불안감을 덜어주면서 돌파구를 찾고, 결국 무력한 청춘이 소설을 통해 처음 발화하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영화 버닝은 1983년 하루키가 발표한 단편 소설의 헛간을 태워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원작을 큰 틀을 적절하게 따라가면서도 취업난과 사회의 양극화 등, 요즈음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만성적인 폐해를 비판하는 등 현실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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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이란? 이 영화에서 표현하려던 불태우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본 후의 이야기보다 보는 아이를 구웠다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때에 맞게 많은 주제이지만 2시간 30분 카린의 긴 시간이라고도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고 시종 긴장감을 유지하고 아이를 태우러 만듭니다.영화의 장르는 미스터리이지만 영화 전반을 담당하는 기본 스토리는 겉으로 보면 추리 스릴러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전혀 알 수 없는 등장인물 벤의 등장과 함께 주인공 존스와 가까운 곳에서는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합니다. 여기에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모르는 말을 이어 놓고 혜미까지 영화는 이 3명의 등장 인물을 중심으로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해설합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나 사건 속에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정수는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정작 영화는 아무런 진실을 밝혀주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건을 정리하는 추리 스릴러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이 실망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래서 호불호가 더 강한 이유가 되기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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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이미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화가 시작되면 청춘드라마 전개를 따라가지만 영화 중반이 되면 벤이 정수에게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다고 고백하면서 영화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됩니다. 자신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태운다는 말에 종수는 벤이 불을 지른 비닐하우스를 찾지만 아무래도 타버린 비닐하우스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의 혜미는 어디론가 잠복해버립니다.영화는 묵직한 주제지만 아름다운 영상미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다. 이창동 감독 특유의 영상미가 의미를 찾는 과정에 힘을 불어넣습니다. 매 컷마다 배치된 사물, 풍경, 인물들이 각각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영상미만 아름답기 때문에 2시간 이상의 상영 시간 동안 영화 속의 숨겨진 의미를 찾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예요. 특히 영화 중반에 나오는 석양을 배경으로 한 장면은 버닝 명장면 중 하나. 어쩌면 버닝의 또 다른 의미인지도 모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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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영화에 결말이 나고 결론은 있지만 영화 버닝은 관객에게 답을 주지 않아요. 진정한 뿌리를 찾기 힘든 청춘이 품은 분노, 그 분노를 푸는 방법 등 오히려 질문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 때문에 잠시 멍해지지만 영화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해하기 힘든 당황스러운 결말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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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 낮, 씨앗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길을 걷습니다. 꼬부라진 뒷모습은 어김없이 노인과 모습.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표정이 없지만 다소 촌스러운 분위기가 감돌고 행동 또한 어수선할 뿐이죠. 영화는 유통업체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수가 소꿉친구 혜미를 만나 그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정수는 유통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청춘이에요. 말 그대로 슬프고 아픈 청춘 소설을 쓰지만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소개하지 못하고 아직 완성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는 빛날 청춘을 무기력하게 만들죠.또 다른 여자가 한 명 있어요. 이름은 혜미.내레이터 모델로 생계를 꾸리지만 꿈을 꾼 적은 없고, 없는 것을 잊음으로써 완성되는 마임을 배우고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카드빚이 있는데 그건 그녀에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카드빚은 현실이고 혜미는 현실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죽음은 무섭지만 연기처럼 사라지기를 갈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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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살다가 서로 다른 세상을 느끼고 있는 정수와 혜미가 만나죠. 해미는 존스에 자신이 아프리카 여행을 가있는동안 고양이를 돌보고 줄 것을 당부하면서 두 사람은 급속히로부터 잘 됩니다. 정수는 자신이 보고 있는 세상을 보지 않는 혜미에게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을 발견합니다.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혜미를 보려고 달려온 존스는 거기서 또 다른 남자 벤을 만납니다. 벤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신비로운(?) 인물.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부유하고, 존스의 말처럼 벤은 위대한 개츠비입니다. 혜미가 정수에게 벤을 소개하면서부터, 혜미 옆에는 항상 벤이 있고 혜미의 전화기쁨을 느낀 정수는 벤의 얼굴을 보고 묘한 질투에 빠져듭니다. 당장 시동이 꺼질 정도로 낡은 자신의 트럭과 굉음을 내며 달리는 벤의 포르쉐, 시골의 낡은 내 집과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벤의 럭셔리 하우스가 대조돼 상실감이 커지고 해미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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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정수는 노는 것이 직업인 벤의 비밀스러운 취미를 듣게 됩니다. 비밀의 취미, 그 비밀의 취미는 2달에 1회씩 일어납니다. 마치 하루키의 원작에서 그랬듯, 2개월, 그 2개월은 벤 이 일상에서 지루할 기간과 비슷합니다. 그것은 실제 청춘의 지루함, 그리고 어디서 비롯됐는지 모르는 청춘의 분노와 불안의 주기가 아닐까요.벤의 비밀스러운 취미를 들은 씨 수말도 또 다른 상상을 합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삶을 살고 있는 벤이지만 꿈만큼은 자신도 벤의 비밀스러운 취미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상이 끝난 뒤 현실로 돌아온 종수는 더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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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정말 생각을 많이 해요. 세상의 짐을 짊어졌지만 혜미는 그 속에서 자유를 찾았다고 해요.카드빚에 묶여 있어도 음악에 맞춰 춤추는 파트아르바이트를 하며 웃음을 잃지 않은 그녀.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해야죠라고 외치는 그의 말이 유난히 가슴에 사무칩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물 속에 혼자 갇혀 있는 혜미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처절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영화는 비슷한 씨 수말과 혜미의 세계가 맞물려 시작합니다.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리며 인격이 무시되는 아르바이트 현장을 경험하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의 울타리도 무너진 종수가 혜미와 어딘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면이 있어요. 혜미와는 달리 슬픈 표정도 안 하고, 그렇다고 울지도 않아요. 그것은 혜미와 많이 닮았지만, 다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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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벤의 등장은 쌓여 있던 종수를 뒤흔듭니다. 결국 신비로운 사건을 겪은 존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만, 수수께끼 같은 세상에 대한 그의 해답이기도 했습니다. 그 안에서 같아도 달라, 다르지만 같은 청춘들의 군상이 그려집니다. 불안해해도 누군가는 광대가 되고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들의 모습과는 또 다른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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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일본의 작가 하루키의 헛간을 굽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어떤 남자가 옛날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가 새로운 남자를 소개해 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소설의 스토리는 대충, 소설가이자 기혼 남성.이다 나랑 팬터마임을 배운 20세의 광고 모델인 그녀와의 사이에, 남자 친구로 등장하는 의문의 남자, 그가 나에게 헛간을 태운다는 묘한 말을 고백하면서 벌어지는 차가운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남자는 갑자기 자신은 헛간을 태우는 것이 취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그때부터 자기 주변에 불탄 헛간이 없는지 둘러보는 강박이 아니라 강박에 빠지게 되고 그러다가 문득 옛 여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새 남자도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몰라요. 이런 흐름의 미스터리한 작품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답게 끝내 왜 여자가 사라졌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긴 소설이 아니라 불과 10장 안팎으로 쉽게 읽히는 소설이지만 의미가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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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특히 해변의 카프카, 상실의 시대, 1q84등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세계적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소설의 헛간을 태워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는 1983년에 발표된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빈곤이라는 책에 실린 작품이며, 국내에서는 출판사 문학 동네에서 반딧불이라는 책에 게재되어 소개되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그가 태우는 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읽는 것이 감상의 포인트이며, 현실과 비현실, 삶과 죽음이라는 대조적인 세계관 설정 속 인물의 심리를 통해 결핍과 벌레를 묘사하는 춘목식 표현법이 드러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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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은 원작 헛간을 태우다를 충실히 영상으로 옮겼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나 원작에서 주인공은 일본에 사는 삼십사 소설가로 소개되지만 영화 버닝에서는 주인공 종수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20대 미등단 작가로서 소개됩니다. 결국 원작의 남자는 유부남이자 직장인인 반면, 버닝 속의 남자는 마땅히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남자이고 영화는 그 남자의 상황을 더 채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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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핵심은 유아인이 아니었을까요? 유아인은 눈빛부터 걸음걸이까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청춘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신예 정종서는 발칙함과 당돌함을 뛰어넘는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고 스티븐 영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벤으로 영화의 긴장감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먼저 정수 역의 유아인은 청춘의 불안감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유아인이 가진 특유의 이미지는 종수를 느끼고 표현하는데 탁월할 정도로 흔들리는 눈과 떨리는 목소리, 거친 숨결 등 감정이입에 좋은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미 완득이, 사도, 베테랑 등을 통해 극과 극을 넘나드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유아인은 사랑하는 여자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려는 순수하고 민감한 주인공 존스로 완벽히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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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인기 미국 드라마 시리즈 워킹 데드에 출연해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두꺼운 팬층을 보유한 배우 스티븐 영이 이 영화로 파격적인 변신을 꾀했습니다. 처음 100%한국어 연기를 선 보인 스티븐 연은 다소 어색하지만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차라리 그게 더 비밀처럼, 신비적인 인물을 표현하기에 딱 적당한 정도였습니다.캐스팅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혜미 역은 감독이 오디션을 통해 발굴한 신예 정종서가 맡아 유아인, 스티븐 영과 매력적인 앙상블을 이뤄냈습니다. 혜미 역을 맡은 정종서의 새 얼굴은 영화 속 빛을 만나 더욱 빛나지만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혜미의 감성과 정종서의 표현력이 합쳐져 혜미를 영화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할 것 같은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조명과 빛, 전종서의 매력이 만나 노을 댄스씬이라는 명장면을 만들어 내며, 정종서만의 특별한 재능과 자신감은 영화 버닝 속에서 그 빛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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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창동 영화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중견 배우가 등장합니다. 녹색물고기에서 조폭 두목 태곤을 연기한 배우 문성근이 그 기쁜 얼굴로 버닝에서 문성근이 맡았던 역할은 정수에게 취직이고 전공을 묻는데 이 장면은 초록생선의 그것과 어딘가 비슷한 점이 아닐까요?이 영화의 이야기로 화제가 된 또 다른 출연자가 있습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최승호 사장이 유아인의 아버지 역으로 특별 출연한 것, 영화에 따라 카메오는 호불호가 따르기 마련인데 그 배우가 최승호 사장인지 기울이면 주인공 유아인의 감정선을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에 이는 미리 살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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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은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 관광부 장관을 지냈고, 그 전에는 고등 학교 국어 선생님이기도 한, 신춘 문예에 당선된 소설가인 이색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감독은 1954년 대구에서 출생, 경북대 국어 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사 시절의 1983년 동아 일보 신춘 문예 중편 부문에 소설 전리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1993년 팍그와은스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은 각본과 조감독으로 참여하고 영화계에 입문하게 되고 1995년에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각본을 쓰고 그 해의 백상 예술 대상 극본상을 수상했습니다. ​ 이어 1996년, 문성근, 명계남, 요규은동 등의 도움으로 자작 시나리오 녹색의 물고기로 감독에 데뷔했지만, 도시화와 근대화의 어두운 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영화는 1997년에 제작된 가장 뛰어난 한국 영화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제4회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 작품으로 처음 소개된 그의 두번째 영화 박하 사탕은 군사 독재 시대의 어두운 면을 파헤친 작품으로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심사 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됐고, 박하 사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박 사모의 자발적 영화 팬 클럽을 탄생시키는 것도 헷슥니다. ​ 2002년 발표한 세번째 영화 오아시스로 세계 3대 영화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 여우상을 받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으로서 자리 매김 되고 있으며, 2003년 2월 참여 정부 출범과 함께 현역 영화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문화부 장관에 전격 발탁됐고 2004년 6월 장관직을 사임한 영화계에 복귀한 그는 네번째 작품인 밀양에 세계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에서 주연 여배우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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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은 잘 알다시피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초청작입니다. 이창동 감독과 칸 영화제의 인연은 상당히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이창동 감독은 2000년 제53회 칸 영화제 감독 주간의 박하 사탕, 2003년 제56회 칸 영화제 비평가 협회 특별 초청의 오아시스와 2007년 제60회 칸 영화제 여우 주연 상 수상작 밀양, 2010년 제63회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시까지 진출한 적이 있거든.게다가 버닝이 경쟁 부문에 진출한 지 8년 만에 개봉하는 복귀작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입증했고, 재미있는 것은 이창동 감독이 세계 영화제를 목표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샘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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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창동과 스릴러를 연결하는 매개체는 음악감독 모그(Mowg)의 음악과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이 아닐까요? 영화를 보면서 모그 음악이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은 침을 삼켜요. 어둠을 달리는 트럭, 달리는 종수 옆에는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고조되는 모그의 베이스가 있습니다. 모그는 이제 악마를 본, 도가니,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의 음악이 담겨 있습니다. 모그는 애니메이션 정글북의 주인공 모글리를 닮았다고 해서 미국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1993년 도미하고 재즈를 공부하고 뉴욕과 LA을 중심으로 클럽 공연, 콘서트,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뮤지컬 등의 작업에 참여했으며 한국 대중 음악상에서 올해의 연주상을 수상한 베이시스트. ​ 2004년 한국에서는 처음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앨범의 Desire를 출시했고 사전 지식 없이 그대로 묻자 해외 유명 뮤지션 앨범으로 착각하기 쉬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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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을 보면 3명의 젊은이들에 대한 인상과 함께 각인되는 부분이 바로 그들이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파주만을 대표하는 종수, 용산 후암동 해미, 반포 서래마을 벤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사는 공간은 모두 실재하는 곳을 찾아 탄생한 곳입니다. 특히 파주만 끝에 위치한 천수의 집은 실제 제작진이 수차례 로케이션 헌팅 끝에 찾아낸 공간. 파주 답사 때 사용하지 않는 한 축사에 노을이 진 것을 발견하고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곳에 씨굴집을 짓고 폐축사를 헐어 지은 씨굴집은 마치 옛날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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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용산 후암동도 뜻깊은 곳입니다. 길을 걸어 올라가면 4층 공동 주택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작은 방은 혜미와 고양이가 살고 있는 안식처.작은 창문 사이는 서울을 상징하는 남산타워가 비춰져, 이 작은 공간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카드빚을 갚는 혜미의 고단한 삶을 추측할 수 있지만,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는 낭만적인 혜미의 성격도 느낄 수 있습니다.벤이 살고 있는 서래마을의 빌라는 종수와 해미의 그곳과는 전혀 대조적입니다. 모두 갖춰져 있고 부족함이 없는 벤의 공간도 실제로 입주 가능한 빌라를 오픈 세트로 빌렸습니다. 이밖에도 이수역, 청담동 등 서울 곳곳을 비춘 화면들은 그야말로 리얼리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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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에 정수가 컴퓨터 앞에 앉는 장면 이후에는 그가 쓴 소설로 보입니다. 현실의 종자는 누군가를 죽일 만큼 대담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소심한 순응형에 가까울 정도다. 이건 정수가 비닐하우스에 불을 붙이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시험 삼아 붙인 불이 타오르면 정수는 깜짝 놀라서 꺼버리잖아요. 줄곧 혜미의 행방을 쫓던 정수가 벤의 혐의를 확신하는 순간 혜미의 찾기를 포기하는 것도 신기해요.새 제물로 보이는 여자, 혜미의 시계, 보일로 추정되는 고양이 등 모든 증거가 벤을 기소하지만 그 순간 정수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자리를 비웁니다. 그리고 돌아가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가장 화를 내야 하는 순간, 존스가 하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소설을 쓰는 것이다. 소설만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그의 음식으로, 제물이니까요.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단죄는 그렇게 소설로 이루어집니다. 무력한 청춘이 현실을 전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허구를 통해서라는 자각이 생기고, 영화의 비참함은 여기에 기인하는 것 같아요. 영화는 내내 현실과 픽션, 진짜와 가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넘나듭니다. 여기서 잠깐! 청춘과 그들을 위로하는 예술만 다뤘다면 영화는 더 간명해졌을 것 같아요. 그러나 버닝은 정치적 메시지는 물론,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저뿐일까요.버닝은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영화지만 특유의 치열함이 약화됐다는 평가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봐야 할 영화, 아니 꼭 봐도 되는 영화라 오늘도 대학로 모임을 마치고 늦게 들어가서 채널을 고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